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디 아민 (문단 편집) ==== 최후 ==== || [[파일:external/farm6.staticflickr.com/5327316056_2ec3984d07.jpg|width=100%]] || || 사망 40여 일 전인 2003년 7월 6일에 촬영된 '''78세''' 무렵의 이디 아민. || 말년의 아민은 몇 년 동안 [[고혈압]]과 심각한 피로감을 앓았는데도 치료를 거부해오다가 2003년 4월부터 치료를 받았으며, 치료가 효과가 있었는지 2003년 7월 초에는 잠깐 퇴원하여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여든 가까운 고령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퇴원으로부터 얼마 안 지난 2003년 7월 18일부터 고혈압과 [[신부전]]으로 인한 혼수상태에 빠져 제다에서 [[투석]] 치료를 받게 되었다. 치료 과정에서 아민은 잠깐 의식을 찾았다고 전해지며, 이때 아민을 간호한 바산티 막와나(Vasanti Makwana, 1958~)[* 14살 때 아민의 인도인 추방 정책으로 영국, 후에는 캐나다로 이민을 간 인도계 여성이었다.]라는 간호사는 아민이 자신의 팔을 잡고 "제발 도와주세요... 전 정말 아픕니다."라고 희미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https://ugandatoday.co.ug/idi-amins-time-of-need/amp/|바산티 막와나의 회상]] 2003년 8월 14일에는 살기 위한 발버둥으로 [[콩팥|신장]] 기증자를 찾는 중이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아민에게 신장을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사람이 2명 있었지만, 그들의 신장이 아민의 체질에 맞지 않아 이식 수술을 하지 못했고, 아민의 가족들은 아민의 생명 유지 장치의 연결을 끊기로 결정했다. 결국 이디 아민은 중독성 표피 괴사증에 걸려 대부분의 피부가 벗겨진 채 이틀 뒤인 2003년 8월 16일 사망했다. 간호하던 바산티 막와나는 아민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내 최악의 적에게도 그렇게 고통스러운 죽음을 안겨주고 싶지 않다'고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피부가 벗겨지는 고통은 '''[[작열통]]보다도 심하다고 한다.''' 여든 가까운 노인이 이런 고통을 느끼면서 죽어갔으니 그의 피해자조차 동정할만 했다.] 아민의 병세가 악화되었을 때 우간다로 귀국하는 문제가 거론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이 "이디 아민은 [[범죄자]]다. 돌아오면 우간다에서 가장 큰 감옥이 있는 곳인 루지라로 보낼 수밖에 없다"고 못을 박았고, 결국 아민은 축출된 이래로 죽을 때까지 살아 생전에 고국의 땅을 밟을 수 없게 되었다.[* 우간다에 있던 아민의 친척들은 아민이 가족 묘지에 묻히기를 소망했다고 한다. [[http://news.bbc.co.uk/2/hi/africa/1919746.stm|출처]]] 여담이지만 아민은 이렇게 타향에서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집권 하의 범죄 행각에 대한 [[재판]]에, 심지어 [[궐석재판]]에도 회부된 적이 없었다. 아민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을 때에, 우간다인들은 독재자의 사망에 대한 안도감과 외국인보다 아프리카인의 권리를 옹호하는 지도자에 대한 향수가 뒤섞인 반응을 보였으나 전반적으로는 냉소적인 반응이 대다수였고, 그렇게 큰 반응은 없었다고 한다. 실제로 캄팔라의 한 43세의 의류 상인은 아민의 죽음에 대해 "아민은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그는 죽어야 합니다. 그가 왜 살아야 합니까, 아니면 그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을 때 내가 왜 울어야 합니까? '''그는 그가 죽인 다른 사람들처럼 죽어야 합니다.'''"라고 화 내며 말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하게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처형 후에 한 여성은 "도대체 왜 차우셰스쿠를 그렇게나 쉽게 죽인 거냐? '''사람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고통들을 천천히... 그리고 영원히 겪게 했어야지!'''"라는 말을 남겼다.] 한편 우간다의 여러 [[모스크]]에서는 "그는 많은 죽음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나쁜 사람이었지만 우간다를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했다"라는 등의 말을 남기며 아민에 대한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Ruwais_Cemetery.jpg|width=100%]] || || 아민이 묻힌 루와이스 묘지(Ruwais Cemetery) || 무세베니는 아민이 해외에서 사망하면 그의 시신을 집으로 가져와 매장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우간다의 관리들은 우간다에서 아민의 장례식을 치르는 것을 거부했다. 결국 아민은 사망 몇 시간 후에 이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소박한 장례식을 치렀는데 이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민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에 있는, 관도 묘비석도 없는 황량하다시피 한 묘지인 루와이스 묘지에 묻혔다. 아민이 이런 곳에 묻힌 이유가 아민의 불명예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 원리주의]] 장법 특성 때문이다.[* 원체 사우디 장법이 관도 묘표도 없이 그냥 보자기나 천으로 싼 시신을 구덩이에 넣고 흙을 부어 묻은 다음 머리와 다리 부분에만 벽돌이나 작은 돌을 묘표 대신으로 놓는 방법이다. 심지어 '''국왕'''도 이렇게 처리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xpHW-CFMsIE|#]]] 이러한 아민의 장지 역시 그의 유족들이 정한 것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